자유와 민주주의 위협 받을 때 애국보수는 어디에 있었나

다시 찾은 평화, 12.3 계엄사태로 돌아보는 보수우파와 경제단체 유감

비상계엄
민주주의
보수우파
노사협력
경제단체
저자

박영삼

공개

2025-04-07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함으로써 4개월을 끌어 온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일단락되었다. 윤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 시도는 국회의 즉각적인 계엄해제 결의와 탄핵소추안 통과, 헌재의 심리와 최종선고에 이르기까지 헌법과 법률이 정한 기구와 절차에 의해 체계적으로 저지되었다. 비록 예상보다 최종 선고기일이 한참 늦어졌지만 대한민국 민주헌정질서의 건재함은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국가 위기 초래하고 제 살길만 찾던 대통령

하지만 우리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가뜩이나 소비침체와 투자부진, 고용둔화와 가계부채 악화로 국내경제 여건이 어려운데 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으로 수출대기업 의존도가 큰 한국경제에 비상이 울리고 있다. 연이은 산불과 대형사고로 민심마저 흉흉한 상태다. 여기에는 외부 요인도 있지만 비상계엄 사태가 직접적으로 촉발한 것들도 상당하다. 대통령의 어처구니 없는 도박으로 한국의 대외신인도는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대가는 앞으로 한국민 5100만이 할부로 치러야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버티는 동안 정치사회적 갈등도 크게 고조됐다. 그는 탄핵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선거부정론을 끌어왔고 야당과 선관위가 적국의 간첩이나 종북세력에 의해 장악된 것처럼 의심하도록 부추겼다. 자신의 명령을 따랐던 군인과 공직자의 증언을 정치공작에 의한 것으로 몰아세우면서 태연하고 뻔뻔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 했다. ‘현직’ 대통령이 공개적인 대중선동으로 지지자 결집에 나서면서, 음모론이 횡행하는가 하면 법원에 대한 폭력사태까지 발생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헌재의 탄핵 선고일이었던 4일에 발표된 갤럽의 정기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은 57%였고 반대하는 여론은 37%였다. 찬성과 반대간 차이가 20%에 달하지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직전인 12월 12일에 실시했던 여론조사의 75% 대 21%에 비해서는 간극이 줄어든 수치였다. 어떻게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한 대통령의 파면을 반대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탄핵정국이 정파간 대결장이 됨으로써 이러한 대치는 한동안 계속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평소 지지율보다 훨씬 더 높은 탄핵반대 여론을 일시적이나마 보호막으로 삼을 수 있었다.

비상계엄 사태에도 아랑곳않던 애국보수

이제 헌재의 최종 결정으로 대한민국의 시계(視界)는 다시 밝아지게 되었다. 앞으로 60일 안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과정이 치유와 회복, 통합과 재건의 과정이 될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선택 기준도 바로 이 재건과 통합의 적임자를 고르는 것에 집중될 것이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후보와 정당도 이 점을 깊이 명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계속된 ’12.3 비상계엄 사태’를 돌아보면서, 우리 사회가 드러낸 치명적인 약점이 없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시민들의 즉각적인 항의와 민주주의 회복을 향한 결집된 의지와 지치지 않는 행동,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작동으로 한국 민주주의 체제의 건강함과 회복력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과 진영간 대결이 한동한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나라 안팎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건강한 우파 진영’의 조직된 행동이나 단호한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헌정파괴 시도에 대한 ’좌우의 공동노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는 점은 깊이 성찰해볼 대목이다.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서 국회를 침탈하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하고 파업과 집회를 금지하며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를 처단한다는 ‘얼토당토않는’ 계엄포고령이 발동되었는데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보수우파의 규탄과 항의는 없었다. 자유총연맹이나 예비역장성단 등 이른바 우익단체들은 오히려 탄핵반대 집회에 동원령을 내리는 행태를 보였다. 보수를 자처하는 진영에서는 오로지 정규재 전 주필, 조갑제 전 편집장, 김진 전 논설위원과 같은 언론인들만 비상계엄을 비판하고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했다. 이들의 단호하고 일관된 주장이 반갑고 고마웠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런 목소리가 너무도 적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위기 앞에서도 이익만 쫓는 경제단체들

이와 더불어 지난 몇 달간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조직된 경제단체들이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철저히 침묵한 것은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다. 전경련의 후신인 한국경제인협회는 12월 3일 이전 정부와 국회를 향해 연일 긴급성명이나 입장문을 내고 규제개혁, 첨단산업 지원,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촉구해오던 중이었다. 대한상의와 경총도 정치권을 찾아다니며 경제상황이 심각하다며 민원을 쏟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던진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는 사후적 우려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은 헌재의 파면 선고가 있었던 지난 4일에 와서야 입장문을 내고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해 탄핵 정국으로 야기된 극심한 정치·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종식하고 사회 통합과 안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쏟아냈다.

어쩌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 노와 사가 좌우를 막론하고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세력에 함께 맞서 위기를 극복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헌법재판소가 이번에도 전원 일치로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주요 세력들만이라도 진영을 넘은 대응으로 최종 판결을 맞았다면 그 의미는 박근혜 탄핵 때보다 훨씬 더 컸을 사건이었다.

경제단체들에게 정치적 입장 표명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평소 경제단체들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진심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과 같은 위험한 시도가 있었을 때 이런 행위가 기업들과 경제 전체에 매우 해롭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공동체 전체를 위해 기업의 이익을 거론할 수도 있구나 하고 느꼈을 것이다. 노동계를 만나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보자고 손을 내밀기라도 했으면 거리에 나선 노조원들과 단식농성을 벌이던 노총위원장들이 ’노사협력’이라는 단어를 진지한 의미로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흔히 노동조합과 기업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조직이고 또는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기업은 정치나 사회에서 분리된 조직이 아니며, 때로는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때로는 사회의 요구에 의해 정치와 사회에 간여하게 된다. 특히 비상계엄 사태나 탄핵 국면과 같은 국가적 수준의 위기 상황에서는 경제단체들이 노동조합와 함께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정치권을 각성시키는 중간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노와 사는 경제적 이해관계로만 보면 큰 입장 차이가 있다. 하지만 자유시장과 헌법질서의 존립 자체가 위기를 맞는 국면에서는 노와 사가 같은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분배의 수준과 규칙을 따질 때는 입장을 달리하지만, 권력이나 외부침입자가 시장을 부수고 밥상을 엎어버리는 상황에서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비이성적인 작동을 일상적으로 제지할만한 세력은 노동조합과 경제단체들밖에 없다. 양자는 조직률의 절대 수준을 떠나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가장 큰 규모로 조직된 민간단체들이다.

나치 치하에서 노동계와 손잡았던 네델란드 기업가들

네델란드의 노동재단(Labour Foundation)은 풍차의 나라였던 네델란드를 세계적인 제조·IT·지식산업 강국으로 만든 ’폴더모델’의 견인차였다. 1982년의 유연안정성 합의로 유명한 ’바세나르 협약’을 탄생시켰던 네델란드 경제사회위원회(SER)도 노동재단이 산파가 돼서 만든 조직이다.

그런데 이 노동재단이 설립된 시기는 2차대전이 끝난 직후였던 1945년 5월 17일로 거슬로 올라가는데, 실질적인 태동은 1940년 5월 나치가 네델란드를 점령했을 때 노동조합과 경영계 지도자들이 지하 비밀조직을 함께 만든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씌어지는 바로 그 독일 치하 네델란드의 이야기이다.

독일군이 진주한 뒤 네델란드 노동조합의 활동은 금지되고 나치당(NSB)을 제외한 모든 정당의 활동도 금지되었다. 이 때 전쟁 전에 노동조합의 상대편이었던 경제단체들도 나치의 부역활동에 동원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직을 해산해 버린다. 상당수 노조 지도자들과 기업가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야 했지만, 강제수용소로 붙잡혀가지 않았던 지도자들이 노사 공동의 비밀회합을 지하조직 형태로 조직했다고 한다. 이들이 한 일은 한편으로는 독일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방해하는 파업과 저항활동을 벌이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나치에서 해방되는 날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않도록 네델란드의 경제와 사회 시스템을 노와 사가 협력해서 재건할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치가 패망하자 가장 먼저 지상에 만들어진 조직이 노동재단이었고 런던에서 돌아오는 망명정부를 제일 먼저 맞았던 것도 이들이었다.

경제사회위원회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펠스(P. S. Pels)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발간한 ≪노동재단의 역사≫에서 “노동재단은 국가적 위기에 노사가 합심으로 지하에서 만든 조직이며 국난 극복과 사회 재건의 이상 속에 탄생한 조직”이라고 쓰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누가 함께 지켜가야 하나

한국 사회에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대립하는 지점이 존재하지만, 양 진영이 함께 공유하는 가치와 비전도 분명 필요하다.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성공 신화는 흔히 생각하듯이 서로 분리된 단절의 역사가 아니다.

박정희가 이끌었다는 60~70년대의 산업화는 이른바 386세대가 경제의 주역이 되었던 2000년대에 와서 한단계 더 비약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87년의 민주화운동이 4.19에 뿌리를 두고 5.18 위에 다져졌지만, 지금의 계엄반대-탄핵촉구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견고한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서로 다른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공통의 자산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과 기업의 공로를 서로가 인정할 필요도 있다. 한국의 재벌체제가 곧 망할 것이라는 걱정과 달리 글로벌 대기업으로 우뚝 성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강성투쟁으로 경제를 파탄낼 거라는 비난을 받았던 한국의 노동운동이 있었기에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소득정체의 질곡에 빠지지는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이번처럼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이를 지키기 위한 행동본능의 DNA가 한국의 노동조합에 체화되어 있다는 점도 찬찬히 곱씹어볼 대목이다.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민주주의의 회복력은 입증됐고 대선 일정이 가시화됨으로써 우리의 관심사는 이제 앞날의 미래를 향해 옮겨갈 것이다. 경제단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업의 어려움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열심히 앞장세울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경제단체들은 민주주의가 위협받던 시기에 자신들이 무엇을 하지 않았고 무엇을 놓쳤든지, 한국의 보수우파와 경제단체들이 반성하기를 기대해본다. 파면되기 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주류, 이른바 애국보수단체들은 종북세력이 야당과 국회를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계엄사태를 일으킨 거짓명분에 불과했으며 설사 종북세력이 있을지언정 그들의 영향력은 야당과 진보진영은 물론 이 나라에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협받는 것에는 아랑곳하지도 않으면서 한 줌의 종북세력을 잡겠다고 나라 전체를 거덜내려 했던 대통령과 그의 추종집단이 자유와 시장을 위협하는 세력이라는 점이 드러났을 뿐이다.

광화문과 여의도, 용산의 광장과 거리에 평화가 다시 찾아 온 지금, 보수우파와 경제단체들은 자신들이 누리게 될 이 익숙한 평화가 실은 거대한 사회적 채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영삼(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노동데이터센터장)
youngsamp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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